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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책을 사야 할지 몰라 시 전집을 골라잡았었다. 시인의 이름은 알았다. 백석. 그러나 시의 제목도 모르고, 아는 것은 한 구절.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리면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겨 무작정 읽었다. 미련한 짓이었다. 그러나 중간쯤 읽었을 때 찾았다. 수라. 익숙한 구절이 이어졌다.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날인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시 문 밖으로 쓸어 벌인다.

 연화는 거기 한 구절 읽고 중얼거렸다. 거짓말쟁이. 나머지는 같이 읊자고 해놓고 뒤 구절은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얼마나 대단하고 긴 구절인가 했더니 짧은 구절이 이어졌다.

 차디찬 밤이다.

 그 한 구절이었다. 아래로 쭉 읽어내렸다. 시의 타래가 이어진다. 왜 이 시를 내게 말해준 걸까. 단순히 아라크네라서? 그럴싸했다. 하지만 아라크네는, 도연화는 이 시에 적힌 것만큼 연약한 존재는 아니었다. 오히려 포식자였지. 이 시를 말해줄 무렵의 그는 자신을 얼마나 연약한 아가씨로 여겼을까? 웃음이 났다. 우스워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끔찍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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