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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이름이 휼이 아니라 해강이라는 걸 알아서 좋았고, 사실은 나이 차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좋았다. 그는 연화에게 거짓말을 했었다. 더 거짓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연화는 그가 말해준 것만 보고 믿기로 했으므로. 쓸데없는 의심은 가지지 않았다. 그럴 사이도 아니거니와, 그냥 믿고 싶었다. 한꺼풀 거짓 뒤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되면 그냥 알게됐을 뿐이다. 배신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에게 서운했던 것은 수라, 그 시의 뒤 구절을 말해주지 않은 것 그것뿐이었다. 하다못해 꿈속에서 나눈 마지막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도 연화는 서운하지 않았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까만 베일을 쓴 채로 남산타워 정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은 이제 종종 있는 취미가 되었다.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운 날은 나가지 않았다. 날이 좋을 때는 나갔다. 오늘은 와줄까 기대를 하지도 않았다. 그냥 약속을 했으니 지켰다. 연화는 거짓말을 하지도, 약속을 어기지도 않으므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아주 작은 약속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라도 홀로 지키고 싶었다. 이는 미련일지도 모른다.

 미련. 연화는 그 단어와 자신이 아주 먼 것이라고 여겼다. 연화는 담담하고 깔끔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무엇 하나에도 미련을 두지 않았다. 기대를 하지 않는 만큼 미련도 없었고, 그래서 후회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도연화는 미련 덩어리였다.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홀로 약속장소로 나간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다. 그래도 한 번쯤은 와주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품고 그 자리에 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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